야생마라는 수식어가 매우 잘 어울리는 자동차
오늘 동행한 야생마는 마세라티의 그란카브리오입니다. 야생마라는 말이 이렇게나 잘 어울리는 차도 없을 것입니다. 윤기 흐르는 갈기를 휘날리며 내달리는 종마인 동시에 언제라도 내동댕이칠 수도 있는 야성을 지닌 차이기 때문입니다. 그란투리스모의 심장이 잠에서 깨며 들려주는 소리는 대체 불가입니다. 시동을 거는 순간 이미 결판은 났습니다. 그 소리 하나로 하루의 스트레스 절반은 날아가기 때문이죠. 그래서인지 주차장에 서 있는 야생마를 잠시라도 깨우 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그란투리스모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그란카브리오의 배기음으로 가득한 주차장은 에코가 가득한 최고의 콘서트홀입니다. 도심에서도 건물에 반사되는 사운드는록 페스티벌의 광활한 스테이지 못지않습니다. 하지만 탁 트인 도로에서 풀 스로틀로 가속할 때의 포효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란카브리오는 사운드만 요란한 자동차가 아닙니다. 지붕을 열고 시속 300km에 육박하는 속도를 경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속도로 달리다간 면허증이 남아나지 않겠지만, 이런 차를 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합니다. 마치 두둑한 지갑을 가진 것처럼 말이죠.
레이싱 정신을 고스란히 담은 자연 흡기 엔진
이제는 그란카브리오와 같은 종족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붉은 머리를 가진 그란카브리오의 심장은 레이싱 스피릿이 살아 있는 자연 흡기 엔진입니다. 그란카브리오의 V8 4.7리터 F136 계열 엔진은 페라리 458 이탈리아의 심장과 형제이며, 실제 레이싱에도 참전했던 순수 혈통입니다. 그란카브리오의 성격에 맞게 두툼한 중저속 토크를 보강했지만, 여전히 7000rpm에서 460마력을 발휘하며 레드 존까지 단숨에 돌아버리는 본성은 그대로입니다. 게다가 터보 엔진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앙칼진 사운드와 즉각적인 응답성은 그란카브리오를 운전하는 이의 가슴을 두방망이질하게 만듭니다.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더운 여름 공기와 함께 하늘과 바다가 그란카브리오를 가득 채웁니다. 하지만 가속페달을 밟은 발에 힘을 주는 순간 훨씬 더 뜨거운 그란카브리오의 에너지와 사운드가 이를 한꺼번에 밀어냅니다. 그란카브리오는 대포알처럼 장거리를 해치우는 그란투리스모와 뼈대를 공유하는 고성능 그랜드 투어러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분위기에 취해 방심하는 건 금물입니다. 그란카브리오에는 카 레이스의 명가 마세라티의 피가 흐르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고속도로에서 내려갑니다. 타이트한 램프웨이를 타기 전에 스포츠 모드를 선택합니다. 엔진과 변속기 그리고 스포츠 스카이훅 전자제어 서스펜션이 잔뜩 조여지고 감각이 한층 명료해집니다. 브레이크를 지그시 밟아 차체의 무게를 앞으로 집중시킵니다. 초대형 스포츠 타공 디스크를 전륜의 6피스톤 캘리퍼와 후륜의 4피스톤 캘리퍼가 죄어들며 코너에 진입합니다. 평소에는 48% 대 52%로 균형 잡인 전후 무게 배분을 브레이크를 이용해 마음대로 조절하며 접지력을 만들어가는 감각은 레이서의 그것과 다름없습니다. 램프웨이 도중에 다리 이음매를 만나더라도 불안하지 않습니다. 마세라티의 전매특허인 스카이훅 전자제어 서스펜션이 민첩하게 움직이며 접지력을 안정시키기 때문입니다. 270도 코너의 램프웨이지만 원한다면 수십, 수백 개의 코너를 만들어가며 코너링의 향연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그란카브리오의 이런 날것과 같은 주행 감각은 엔진만큼이나 흔하지 않습니다. 요즘 스포츠카는 엄청나게 빠르지만 정작 가슴은 별로 뛰지 않습니다. 영혼이 없다고 할까요? 땀 흘리지 않는 세계신기록에는 감흥이 없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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