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길에서 또 하나의 벽 앞에 서 있지만 물러설 생각은 없습니다
얼마 전 드라마 <라이프>를 마친 배우 이동욱이 <레옹>과 함께 뉴욕으로 훌쩍 떠났습니다. 아무도 알아보는 이 없는 낯선 도시에서 그는 오랜만에 홀가분하고도 자유로운 시간을 만끽했습니다. 배우로서 또 남자로서 새로운 챕터를 쓰기 위해 고민과 상념을 털어내는 시간을 가진 이동욱. 뉴욕의 거리를 함께 거닐며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LEON(이하 L) 드라마 <라이프>를 끝내고 오랜만에 가지는 휴식기죠. 보통 하나의 작품을 마치면 어떤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나요?
대체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냅니다. 드라마를 촬영하느라 방전된 체력을 끌어올리고, 그간 바빠서 못 봤던 친구 들도 만나죠. 그 외에는 거의 혼자 지내요. 처음에는 혼자 있는 게 외롭고 심심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편안하게 여겨 져요. 누군가의 기분에 맞추지 않아도 되고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아도 되니까요.
L 이번에는 <레옹>과 함께 뉴욕으로 떠나왔습니다. 며칠간 머물면서 뉴욕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다가오던가요?
거대하고 바쁜 도시. 직접 와보니까 정말 그렇네요. 지나 다니면서 사람들을 관찰했는데, 다들 통화를 하거나 텍스 트를 보내거나 하며 엄청나게 바쁘더라고요. 서울보다 더분주한 느낌이었어요.
L 일상에서 잠시 떨어진다는 건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거예요. 배우로서는 한 작품에서 벗어나는 것 또는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것 중 어느 쪽에 가까운가요?
일단은 벗어나려는 시간이 먼저겠죠. 그러고 나서 마냥 퍼져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그 기간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 듯합니다. 지금은 드라마를 끝낸 지 1달 정도밖에 안 됐으 니까 다음 단계를 고민하기보다는 모두 내려놓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시기예요. <라이프>가 워낙 정신적으로 힘든 작품인 데다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환경 때문인지 많이 지쳤거든요. 이제 점점 그런 것에서 벗어나 점점 편안한 시간이 되어야겠죠.
L 아직 드라마로부터 빠져나오는 과정이겠네요.
네. 사실 <라이프>는 제가 생각하고 준비했던 것보다 많이 보여드리지 못한 듯해서 아쉽고, 한편으로는 죄송스러 워요.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표현되지 않더라고요. ‘발전이 없이 정체되어 있는 건 아닌가’, ‘연기하는 방식을 바꿔 봐야 하나’ 고민했을 정도로요. 캐릭터는 물론이고 개인적 으로도 그런 생각이 많이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런 고민 때문에 처음에는 좀 힘들었어요. ‘왜 더 잘하지 못했을까.
왜 더 열심히 하지 못했을까.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라며 자책했죠. 그런데 지금은 아니에요. 그런 자책을 계속해봐야 이미 지난 일이니까요.
L ‘예진우’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 있다면요?
겉으로 표현하는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시청자에게 감정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 많이 고심했어요.
미세한 표정이나 눈빛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제 생각보다 많이 모자랐죠. 모니터링하면서 굉장히 괴로웠어요. 극중 비중이 큰 인물인데 괜히 저 때문에 드라마 전체에 악영향 을 미치는 것 같아서요. 지금도 좀 그래요. 아직 모든 감정이 혼합된 상태여서 다 털어버렸다고는 못 하겠어요.
L 그래도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지금 경험하는 감정이나 상황, 생각, 기분은 나중에 소중한 자양분이 될 수 있겠죠. 단순히 그냥 실망스럽다거나 속상하다는 감정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요. 어쨌든 저는 연기로 대중을 설득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이번에 겪었던 일과 감정이 앞으로 제 연기에 큰 도움이 되어야죠. 그런데 사실 늘 그런 건 있어요. 저는 연기를 하면서 한 번도 쉽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늘 어려워요. 항상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 들고, 그걸 뛰어넘기 위해 애쓰죠. 그때그때 겪는 감정은 제게 무척이나 크게 다가와요. 그럴 때마다 ‘어 떻게 이것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킬까’, ‘어떻게 해야 내 앞의 벽을 잘 뛰어넘을 수 있을까’ 하며 계속 고민하는 거죠.
L 새로운 작품을 하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인가요?
그냥 몸이 반응하는 것 같아요. 이제 새로운 작품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피어오르기도 하고, 아주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대본을 받을 때도 있고요. 그게 지금까지 안 해봤던 캐릭터나 장르라면 더 좋고요.
L 인생의 주기처럼 배우라는 직업에도 주기가 있다면, 지금은 어디쯤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이렇게 얘기하면 정신 못 차렸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는 데요. 전 아직도 제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느껴 져요. 못 해본 것이 너무 많고, 못 만나본 사람도 너무 많아 요. 여력이 된다면 계속 이 일을 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굳이 100m 달리기로 따지면 한 20~30m가량 온 느낌?
L 혹시 20~30m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있나요?
돌아가고 싶어요. 저는 너무 준비 없이 시작했어요. 고3 때아역으로 데뷔했거든요. 그때 뭘 얼마나 알았겠어요. 그 나이에 미래에 대한 고민이나 계획을 얼마나 했겠어요. 그저 제 생활에 치여 쉬지 않고 연기만 했던 것 같기도 해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부담 감도 있었고요. 돌아가고 싶어요. 다시 돌아가서 더 잘하고 싶으니까 돌아가고 싶은 거죠.
L 어릴 적부터 꿈꿨던 남자 이상형이 있나요? 지금 자신은 그때의 이상형과 얼마나 닮아 있다고 생각하나요?
제 이상형은 지식이 많은 남자예요. 단순히 뭘 많이 배운 사람이라기보다 지혜롭고 대범하고 담대한 남자. 지금 저는 아직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렇게 되려고 계속 생각하고 노력하죠. 심지도 굳었으면 좋겠고, 다른 사람한테 너그러웠으면 좋겠고. 이런 정도면 거의 해탈하는거 아닌가요(웃음). 그래도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이런저런 사건이나 일에 덜 타격받는 것 같아요. 예전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 뭐’라고 자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L 예전에는 잘생긴 꽃미남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대중이 배우 이동욱을 멋있는 남자 혹은 신사로 바라보는 듯해요. 스스로 돌이켜볼 때, 언제부터 자신에 게서 어른스럽고 남자다운 멋이 드러났다고 생각하나요?
나이가 들면서?(웃음) 사실 정신 연령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기준이 있잖아요. 제가 20대 초반처럼 행동할 수도 없고, 그걸 저도 잘 알다 보니 거기에 맞춰가는 거죠.
L 이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뉴욕에서 보내는 공식 일정은 모두 끝났어요. 이제 이 도시를 어떻게 즐길 생각인가요?
일단은 많이 걸어야죠. 다른 나라 도시에서 많이 걸으면 자연스럽게 지리를 익힐 수 있는 게 가장 좋죠. 다음에 오더라도 ‘아, 여기쯤 뭐가 있었지’라고 기억하면 여행에 도움이 되니까요. 아, 오늘 밤에 류현진 선수 경기를 보러 갈거예요. 며칠 전에는 지금 인터뷰를 하는 이 바에서 오승환 선수 경기를 보면서 응원했는데, 좋았거든요.
L 한국으로 돌아간 이후에는요?
또 혼자 고민하고, 걱정하는 시간이 계속되겠죠. 앞서 얘기한 고민, 그리고 <라이프>라는 작품을 하면서 겪었던 감정들…. 그게 사실 고통이잖아요. 되게 힘들고 싫은데, 어쩌겠어요. 계속 부딪혀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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