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고기와 비빔밥처럼, 한식이라고 하면 으레 떠올랐던 전형적 이미지가 더욱 다채로워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으로 외국에서도 주목받는 모던 코리안 퀴진. 친숙하면서도 특유의 정갈한 매력을 담은 고품격 레스토랑부터 파인 다이닝까지, 요즘 한식의 면면을 한데 모았습니다.
규반
한식의 뿌리를 발견하는 반가의 요리
‘서옥 규’와 ‘밥 반’. 맑은 구슬처럼 정직하고 깨끗한 요리를 선보이겠다는 김지영 셰프의 음식 철학이 담겨 있는 곳입니다. 20년 넘게 궁중 요리를 공부해온 그녀의 풍성한 노하우를 가득 담은 반가 음식을 맛볼 수 있죠. 이곳에서는 임금께 바치던 음식상을 일컫는 ‘진어찬안’을 메뉴판의 이름으로 삼아 요리의 역사적 배경을 소개합니다. 기대감이 한층 높아진 가운데 요리가 서빙되면 셰프가 메뉴에 대해 설명해줍니다. 덕분에 규반을 방문하는 모든 손님은 VIP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들죠. 이렇듯 김지영 셰프는 전통 식문화를 알리는 역할도 수행합니다. 그녀가 소개하는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과거의 풍습이 스며들어 있는 설야멱적. 눈 내리는 겨울, 화로에 반쯤 익힌 소고기를 냉수에 잠깐 담갔다가 센 숯불에 다시 굽기 때문에 부드럽게 녹아드는 고기의 맛이 일품입니다. 이외에도 궁궐에 귀한 손님이 방문할 때 대접하거나 왕족의 생일상에 꼭 올랐 다는 어만두를 비롯해 제철 식재료로 요리한 음식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프라이빗한 분위기에서 전통 한식 문화를 체험하고 싶을 때, 고급스러운 안주에 술을 한 잔 기울이고 싶을 때 자연스레 생각나는 곳입니다.
묘미
한식의 묘한 아름다움을 담았습니다
유학 시절 한식의 소중함을 깨닫고 뿌리 있는 한식을 만들자고 다짐했던 장진모 셰프. 그는 품격 있는 한식의 아름다움을 소개하기 위해 고문헌을 들여다봤습니다. 조선시대에 중국 사신들에게 베풀었던 영접 내용을 실은 <영접 도감의궤>부터 잔치나 연회 때 준비했던 궁중 음식을 기록한 <진찬의궤>, <진연의궤> 등을 연구해 ‘묘미’에서 재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죠. 몇백 년의 시간이 흐른 만큼 현대의 것과는 식재료와 조리 기법에 차이가 있지만, 계속 보존하고 이어나갈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최대한 옛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물론 직접 요리해본 후 지금 방식으로 만든 요리가 더 맛있으면 합리적으로 메뉴를 구성합니다. ‘콩국수는 찬 것’ 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온도감을 높인 잣국수, 굴국을 얼려 만든 그라나타 등 새로운 요리를 창작하기도 하죠. 장진모 셰프는 한식의 중심은 뭐니 뭐니 해도 ‘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백진주, 골든퀸 3호, 영호 진미 등 다양한 쌀 품종을 테이스팅 한 후 매번 가장 좋은 상태의 쌀을 수급해 밥을 짓습니다.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바 좌석, 프라이빗 한 모임에 제격인 별실 등 이곳을 찾는 손님에게 한식의 깊은 맛과 새로운 경험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2가지로 공간을 꾸몄습니다. 실내 곳곳에 놓인 예술 작품을 감상하며 품격 있는 디너를 즐겨보세요. 그동안 몰랐던 한식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겁니다.
부토
우리 땅이 품어낸 한식
대문을 둘러싼 나무 문틀과 실내 정면에 보이는 아궁 이는 어린 시절의 외갓집 부엌에 들어선 듯 정겨움을 자아냅니다. 하지만 홀 좌석에 배치한 조명과 쿠션, 스툴 등 디자이너의 작품은 모던한 느낌을 풍기죠. 임희원 셰프는 이런 인테리어의 분위기와 마찬가지로 요리 또한 한식의 전통과 현대적 요소를 조화롭게 풀어내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직접 담가 몇 년째 묵힌 장, 주문 제작한 가마솥, 요리에 은은한 훈연 향을 입혀주는 짚불로 어린 시절 맛봤던 할머니의 음식을 만들죠. 아보카도와 김, 오미자에 절인 마, 유자와 코리앤더를 뿌린 치자를 활용해 생선회를 대체하는 베지테리언 사시미 메뉴를 개발하는 등 또 다른 한식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홍콩 ‘모모제인’에서 선보였던 메뉴를 업그레이드한 가지튀김 또한 타피오카 펄을 갈아서 가지에 입힌 후 튀겨내 간장 양념에 찍어 먹는 요리로 겉은 바삭하면서 쫄깃하고 속은 촉촉해 인기를 끌고 있는 별미 요리입니다. 요리 프로그램 <올리브쇼>에 출연했던 스타 셰프이지만 편안하면서도 창의적인 요리로 한식의 기본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임 셰프. 아버지의 땅이라는 ‘부토’의 뜻처럼, 너른 마음으로 생명을 품은 흙이 만들어낸 제철 식재료를 활용하겠다고 강조합니다.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모습의 한식을 위해 내추럴 와인 또는 위스키를 페어링하거나, 바텐더와 함께하는 팝업 디너를 여는 등 색다른 시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소설한남
한 편의 소설을 맛볼 수 있습니다
화이트 컬러를 메인으로 한 인테리어가 은은한 간접 조명, 깔끔한 블랙 톤의 가구와 조화되며 언뜻 모던한 갤러리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설한남’. ‘품서울’의 오픈 멤버이자 ‘모수서울’의 수 셰프로 활약하며 꾸준히 한식 경력을 쌓아온 엄태철 셰프의 파인 다이닝입니다. 한식 본연의 맛은 계승하되 현시대를 사는 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모던 코리안 퀴진을 선보이죠. 레스 토랑 이름은 ‘한식을 바탕으로 그의 상상력을 더한 한편의 소설 같은 음식’, 그리고 ‘수수하고 정갈한 본연의 한식을 제공한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 걸맞게 이곳은 한식의 매력인 다양성에 초점을 맞춰 손님이 최대한 여러 음식을 맛볼 수 있도록 전채부터 나물, 구이, 지짐이, 밥, 죽 등으로 코스를 구성합니다. 친근한 요리지만 조리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살짝 데친 낙지를 숯불에 굽고 기름에 튀긴 가지의 껍질을 벗겨 얇게 썰어 올린 후 초간장 소스를 곁들이는 가지낙지냉채, 살을 발라낸 대구 뼈에 밀가루를 넣고 걸쭉하게 끓인 후 대구 살을 얹은 대구찜등 구하기 쉬운 식재료와 색다른 조리법을 결합한 메뉴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이제 특별한 날에 자신 있게 추천할 한식 파인 다이닝이 또 하나 늘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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